좋은 순간들

다양한 경험

잠을 오랫동안 잤다. 잠깐씩 깬 걸 감안해도 15시간은 잔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오래 잔 건 신기하다. 아무래도 저번 주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관계로 피로가 꽤 쌓였었나 보다. 그치만 원래도 항상 피곤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조금은 편안해져서 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잠깐 깨어났을 때엔 되게 머리가 복잡하고 이상한 걱정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싹 사라졌다.

저번 주에 되게 좋은 일들이 많았다. 피크닉 가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디자인 축제 네트워크 파티에 가서 패턴플로우를 자랑하기도 하고, 어제는 연극도 봤네. 뭐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자면, 되게 좋았다. 아, 펀딩도 마쳤다. 이미 정해져 있던 이벤트라 별다른 감흥은 없다. 단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생겼을 뿐이다.

그저께 갔었던 서울디자인위크 네트워크 파티! 현지님이 동반입장권을 신청해주셔서 따라갔다. 고마워용. 먼저 도착해서 먼저 디제이한테 가 패턴플로우를 소개했다. 전날 어디 해커톤 갔을 때 디제이분이 되게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막 그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지만 인스타까지 교환하긴 했다. 다만 영어라서 살짝 버거웠다. 이후 공연은 되게 멋지게 하시더라.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데 지정석이라고 뒤로 가달라 하시더라. 따로 표시는 없었다. 한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대선배님이더라. 디자인 쪽 협회장이시기도 해서 이런저런 행사에 많이 초청받고, 책임감으로 참석하신다 한다. 끝나고 삼겹살도 사주셔서 맛나게 먹었다. 조만간 사무실 놀러 오라고 하셔서 갈 예정이다!

패턴플로우를 챙겨가긴 했지만, 쑥스러워 그걸 자랑하고 다닌다거나 잘 보이게 두지는 않았다. 태경 대표님이랑 이야기하는 도중 현지님이 가져가서 앞 테이블에 세워두셨는데, 그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한 명 두 명 설명해주다 보니 사람들 반응도 너무 좋고 엄청 재밌어져서, 누가 기웃거리면 말벌 아저씨마냥 달려가서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되게 많은 분들이랑 명함도 교환하고, 앞으로 같이 뭐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현지님 최고다. 아, 그런데 삼겹살 먹으면서 말씀해주셨는데, 어르신한테 00대표님 이렇게 하지 말고 대표님이라고만 부르라 하신다. 그게 예의라고 하시는데, 잘 모르겠다. 나는 누가 이름 안 붙이고 대표님이라고만 하면 더 서운해서 일부러 붙인 거였는뎀. 어쨌든 그렇다니까 그분한텐 그래야지.

어두운 파티장에서 패턴플로우를 만져보고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들
파티에서

집에 돌아와 정신없이 교환한 명함들을 다시 살펴보는데, 교수님들이 그렇게 많더라. 인정받은 느낌도 들고 되게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어떤 행사나 여러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패턴플로우를 챙겨가려 한다! 당장 내일도 상두 대표님이 이탈리아 문화원 무슨 파티 가자는데 챙겨가야지. 근데… 되게 재밌고 좋고 막 그렇긴 한데, 끝나고 나서 허무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올라온 기대만큼 당장 무슨 일이 생긴다거나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으니까 다시 원상태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때 기분은 영 별로다. 음… 좀 배부른 소린가. 어쨌든 패턴플로우는 진짜 파티만큼 어울리는 곳이 또 없는 것 같다. 어그로 1티어다.

작년 아트코리아랩 페스티벌에서 구글 소속?으로 온 한 작가가 그렇게 말했었다. 작가로 성공하려면 집에서 계속 작업하는 것보다 이런저런 곳에 가서 사람들이랑 말하고 네트워킹하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확실히 그럴 것두 같긴 하지만, 내가 그런 걸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순간은 확실히 재밌고 다양한 기회가 생기는 장인 건 확실한데, 그만큼 피로도 금방 쌓이니까. 나는 집이 좋다.

꼭 집이 아니어도 좋은 것 같다. 그 파티 전날에 현지님이랑 올림픽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어렸을 적 기억에 남은 나홀로나무를 보고 싶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언젠가 한번은 보러 가야지 하다가 위치를 못 찾았다… 아마 작년엔가 거기라는 걸 알고 계속 미뤄뒀던 곳이다. 왜냐면 너무 멀었다. 강남이어서 홍대에서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차라리 자전거 타고 하늘공원이나 노을공원 가는 게 훨씬 좋았다. 어쨌거나, 가서 맛있는 음식들도 배부르게 먹고 소화를 위해 공원을 많이 걸어 다녔다. 그리곤 돗자리에서 좀 누워 있다 시간 좀 때우다가 왔다. 빠삭킹 치킨도 너무 맛있었고, 그냥 되게 좋았다.

맑은 하늘 아래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올림픽공원
피크닉

둘이서 공원에 가는 건 서울에 올라와선 처음이었다. 원래 갑자기 생각나면 자전거 타고 혼자 갔었다. 정말 친한 사람들에겐 같이 공원을 가자는 말을 가볍게 해본 적이 몇 번은 있는데, 정말로 가지는 않았다. 일정 맞추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같이 갔을 때 혼자 갔을 때처럼 편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막 아무리 친하더라도 뭔가 억지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든가, 조금은 버거울 수 있어서. 혼자 공원을 갔을 때의 그 편안함이 사라질까에 대한 걱정? 주변 카페나 밥을 먹는 건 몇 시간이면 금방 끝나지만, 공원은 훨씬 긴 시간이기도 하니까. 이번에도 그런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너무 편하고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숲을 걷고, 누워서 하늘 보고… 역대급 힐링이었다.

그 시간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최근 만들어서 쓰고 있는 AI 시스템도 분명 한몫했을 거다. 뭐냐면… 단순하게 말해서 정말 AI가 팀으로 하루 종일 밤새면서 일하는 그런 건데, 그 덕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서 해방된 거다! 무엇보다 내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일이 진행되고 개선되고 있다는 그 기분 덕분에, 마음 편히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오늘 와서는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시스템이 많이 개선되어서 해볼 만한 것들이 많아지니… 가능성이 많아지고, 뭘 더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게 싫어서 만들었는데, 결국에는 또 생기는 게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앞으로 패턴플로우에 관한 많은 것들을 그 시스템에게 위임하고자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건 정말 잘하는데, 막상 디테일을 봐보면 당연하게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결국에는 직접 손보긴 해야 한다.

왜였는진 모르겠는데, 5시간 전에 글을 쓰다 학교 동아리방에 가서 납땜을 하고 왔다. 그러곤 다시 집을 나가 사무실에서 패턴플로우 6대 조립을 하고 왔다. 동선이나 효율 같은 걸 생각하면 더 준비하고 하는 게 좋았지만, 할 수 있는 건 빨리 해치우고 싶었나 보다. 머릿속에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지면 힘들기 때문에, 당장 줄일 수 있다면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서 하는 게 좋다. 6개 만드는 데에 납땜을 2시간, 조립을 2시간 정도 했다. 다행히 전부 잘 동작했고, 조만간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서 워크숍 및 대여용으로 쓸 거다.

바닥에 놓인 조립 완료된 패턴플로우 여섯 대
6개 만듦

펀딩비를 정산받으면 제작해야 하는데… 프린팅에 있어서 또 고민된다. 프린터를 구매해서 할지, 아니면 그냥 국내 업체에 맡길지. 비용이냐 시간이냐 차이인데… 그냥 빠르게 해치울까. 근데 그러면 나한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사실 프린터가 생겨도 많이 쓸까? 조만간 이사할 원룸 베란다에 충분한 공간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그 방이 나올지도 아직 안 정해졌으니 사실 필요 없는 고민이긴 한데.

굿즈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포스터 프린팅? 그거 하면 그래도 예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해보곤 있는데, 역시나 번거롭다. 웹사이트도 멋지게 만들어야 하고, 막 이것저것 서비스들에 가입하고 연동을 해줘야 하는데 그마저 너무 귀찮다. 직접 프린팅해서 파는 건 뭐 가능이야 하겠지만 내 손이 너무 많이 간다. 게다가 타깃이 전부 글로벌이니, 사실상 대행 서비스들을 메인으로 가져가야 하는 건 확정이다.

음악이랑 영어 공부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잘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바라는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건지,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건지… 너무 조급한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