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

나의 자리

최근 만든 AI 시스템 덕분에 컴퓨터 앞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루빨리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 혹은 토큰이 아까워서 밤을 새며 AI와 씨름하는 시간도 사라졌다. 물론 지금은 잡생각에 잠이 들지 않아서 밤을 새고있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면서 시켜둔 작업을 완수하리란 확신이 어느정도 생겼다.

밤 광장에 세운 크리스마스 트리 조형물 시뮬레이션
크리스마스 트리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트리 조형물을 디자인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데에 실험적으로 사용해 보았는데 그 과정과 결과가 너무 만족스럽다. 놀라울 정도로 편하고 빠르다. 맨 처음, 그리고 중간중간 체크포인트와 같은 시점에서 전체 그림과 방향을 지시해주었을 뿐인데 모두 완성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실제로 구현 가능한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뭐가 되었던 자원을 가진 사람을 설득시켜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거다.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하고 머릿속에서 다양한 장면을 굴려본 시간이 당연히 있지만, 실제로 30개 이상의 시안을 만들어보고 좁혀가며 최종 보고용 문서까지 만드는 데에 채 3일이 걸리지 않았다. 이 3일 중 내가 개입한 시간은 많이 잡아야 5시간 언저리일 테다. 그리고 이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의외로 높았다. 오히려 나만 별로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아니면 예의상 좋다고 해준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니라고 믿을거다. 그게 맘이 편하니깐.

크리스마스 트리 조형물의 마지막 시안 다섯 개
마지막 5가지 시안

이 시스템의 활용방식은 되게 다양할거다. 유사하게 만들어서 쓰고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존재하기도 하구. 그들은 어떻게 쓰고 있으려나. 앱이나 서비스를 공장처럼 돌려서 만들고 있으려나? 처음에는 나도 그런식으로 햇 돈을 벌어보고 싶었는데 친형이 그러지 말라고 너무 일용직 마인드라고 하더라. 나한테 정말로 가치있는 방향으로 활용하라고… 어감이 되게 불편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 인정했다.

그치만 한가지 부작용이라 해야할까, 얘들이 쉬는 모습을 보고있지 못하겠다. 특별히 새로 생긴건 아니다, 남을 토큰이 아까워서 밤을 새던때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 시간과 강도가 압축되었을 뿐이다. 이제는 당장 어떤 기능을 만들지보다 무엇을 만들지를 계속해서 찾아내려 한다. 패턴플로우의 기존 코드들을 개선하는 작업들에도 여럿 썻고, 공장처럼 패턴을 만들게도 해두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패턴은 솔직히 별로다. 백개중에 한개 건질까 말까 한다. 어쨋든!

이런거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적을 말들이 많지만 조리있게 할 자신도, 당장 몇시간동안 깨어있을 자신도 없다. 슬슬 한시간 정도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자면 될 것 같다. 그러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지.

그렇게 작업자보다는 기획 및 통솔자의 역할로 옮겨간 기분이 든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생기게 되었고 최근에는 책을 읽으며 멍청해진 머리를 회복시키고 있다. 그렇게 고른 책이 두권 있는데 하나는 “예술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책이고 하나는 “충돌하는 세계”라는 책이다. 특히 후자가 내 관심사인 기술과 예술의 융화와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재밌다.

언젠가부터 이런식으로 공통된 주제를 조금 다르게 보는 두개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든 것 같다. 정교하게 분석 비교하고 내용들을 온전히 체화할 정도의 머리는 없지만 그런 느낌을 아주 조금은 받고있다. 하나만 쭉 읽었다면 그게 되게 당연한 것 같고 하나의 진실처럼 외우게 될 것 같은 상황에도 하나의 상황을 여기선 이러케 저기선 저러케 해석하는구나… 이런느낌? 나쁘진 않다!

둘 다 아직 절반조차 읽지 못했는데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이 꽤나 바뀌어 가는 듯 하다. 그리고 컴퓨터 아트같은 경우는 정말로 똑똑한 선구자들이 많다는 것과 되게 옛날같은데 생각해보면 엄청 최근같기도 하고… 암튼 모르겠다. 다만 내가 되게 새롭게 떠올린듯한 발상들이 몇십년 전에 이미 다 나왔던 낡은 생각이라는 게 좀 맘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완전히 새로운게 있기야 하겠냐만 어떤 시조나 개념, 생각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이 멋져보이긴 해서 부럽다.

여기서도 사이버네틱스라는 말은 엄청 나오더라. 전에 책 읽다가 되게 어려워서 포기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조만간 각잡고 이해해보면 좋으려나. 막 다양한 생각을 가진 기술자나 예술가들이 모여서 연구하고 실험하고 그런 환경도 부럽더라. 항상 벨 연구소가 등장하는데 요즘은 비슷한게 뭐가 있으려나? 아무래도 앤트로픽이나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정도 되려나.

자본만 있으면 되게 재밌는 실험들 할 자신 있는데… 민간 연구소처럼 만들어서 교수님들이나 자본 있는 사람들한테 요청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분명히 같은 생각을 했었다. 다만 보여줄 사례가 없어서 포기했는데 패턴플로우는 좀 다른것두 같고. 특히나 최근 만든 패턴플로우 소개영상이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교수님들이 주변에 자랑했다고 알려주시더라.

아 곧 있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초대장이 40장이 생겨서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한테 보냈다. 덕분에 되게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톡을 주고받았다. 재밌는건 몇년간 연락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되게 기쁘게 받아들이고 오겠다고 하더라. 더 재밌는 건 초청받을게 뻔한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한테도 보냈는데 생각보다 좋아하더라. 이런 명분이 생겨서 패턴플로우 소개영상도 같이 보냈는데, 거기서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는것도 같다. 연락없다가 뜬금없이 나 이런거 해요 보내는 것보단 확실히 자연스럽다. 어쩌면 이런것도 전략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이번엔 우연이지만 다음부턴 의도적으로 해봐야지. 뭐 사실 귀찮아서 또 대강 할테다.

으으음 눈앞에 지금 모니터가 2대 위아래로 있고 아래에서 이 글을 적고있다. 바로 위에는 디스코드가 열려있고 하드웨어 도움 섹션에서 누군가 채팅을 입력하다 말다 수십번 반복하는게 보인다. 되게 신경쓰인다. 그리 달가운 메시지는 아닐게 분명하다. 뭔가 문제가 생겼고 거기에 대한 불만이 쌓이신 것 같다. 그치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건 없고 하드웨어가 원래 그런거니…

오 방금 띠링하고 메시지 올라왔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좋은 내용이다. 일단 다행이고 하드웨어 문제도 잘 해결되면 좋겠다. 이런 내용을 디스코드에 당장 적고싶지만 그러면 더 대화가 길어질수도 있고 원래는 자는 시간인 만큼 오프라인으로 켜둔거라 참고있다! 내일 일어나서나 답장해야징.

바로 직전에 내가 이런식의 메시지를 적긴 했다. 지금 작동하는 패턴플로우 스펙을 제외하곤 하드웨어에 있어서 나도 굉장한 초보기에 그 부분에 대한 확장과 호환에 관해서는 뭘 해주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더하여 그런 이유에서 같이 만들어가는 걸로 임해달라고. 어쩌면 오픈소스로 진행하기를 마음먹은 그때부터 계획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이 편이 더 재밌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하드웨어 확장은 같이 만들어가자는 내용의 디스코드 메시지
디스코드 채팅

패턴플로우라는 생태계에서 각자의 역할과 자리를 찾아서 즐기면 되는거다. 그리고 나만이 가능한 프로젝트 헤드? 자리가 있는거구. 이것도 나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주면 좋겠는데 일단은 전적으로 감당해야하는 부분이다.

몇시간 전에 디엠으로 패턴플로우를 변형해서 만든 작품을 나에게 공유해준 사람이 있다. P2 LED4개와 라즈베리파이로 만든, 그니깐 아주 커다란 형태였다. 이걸 패턴플로우라고 해도 될 지 아닌지는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 따라 달라질테다. 마침 주변에 크기를 키운 버전의 패턴플로우에 대한 비즈니스적인 요구도 몇 번 왔었다. 당장 단기간에 만들고 테스트하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용기가 없어 못하겠다고만 해놨는데, 이렇게 누군가 만들어서 방법을 공유해주면 말이 달라진다.

가능하다면 활용해서 얻은 수익을 공유해준 사람한테 정당한 몫을 주고, 나는 활용사례를 많이 만들어 주고… 나중에는 이 활용사례들을 통해 그 사람도 직접 지역 비즈니스에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렇게 만들고 싶고, 잘 할 자신이 있어서 일단 메시지는 조금 보내놨다. 마음같아선 계획을 문서로 엄청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당장 그러면 부담일 테니 적당히 끊고 간단히 물어봐두었다. 잘 되면 정말 재밌겠다.

패턴플로우 계정의 실질적인 주인이기도 하고, 이승훈이라는 개인으로도 되게 다양한 분야에 얽혀있는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하드웨어, 디자인, 예술쪽에 비중은 각각 다르지만 한발씩 걸쳐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각 분야에서 자신의 업을 꾸려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다른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두려움이라 표현하는게 맞나? 어쨋든간에… 디자인쪽 사람은 개발쪽을, 개발쪽은 디자인쪽을, 하드웨어도 마찮가지로 각자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 뭐 그런게 공존하는 느낌이다.

되게 특이한건 그 직접 연결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람조차 적은듯 하다. 잘 활용한다면 되게 재밌는 일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것만 같다. 지금 읽는 책에서도 공학자랑 기술자들을 연결하는 시도를 주도한 사람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데 어쩌면 지금 홍대에서도 비슷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이 최고의 조건같기도 하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걸 성공적으로 하게 된다면 mit 미디어랩을 간다거나 그런 목표가 사라질것도 같다. 아니다, 일단 그 목표가 사라지면 학부 졸업도 포기할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뭐가 되었던 재밌는 쪽으로 할 것 같고… 그럼에도 돈은 벌 수 있어야하고 동시에 귀찮지도 않으면 좋겠다. 그런게 가능하려나. 편한게 좋은데 금방 또 심심해진다. 할 건 많다. 급하게만 하지 말자. 이 블로그인지 일기인지 이제는 구분이 안되는 글도 자고 일어나서나 올리자. 1시간만 더 적으려 했는데 어느새 2시간 지나긴 했네. 졸음도 가버린 느낌이다. 아닌가 졸린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