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패턴플로우 덕분에 버틴 날들이 많다. 매일 의식처럼 패턴을 만든다. 짧으면 1시간에서 길면 2시간 정도 걸리는, 어쩌면 고된 일이지만 이거라도 하고 있으면 좋다. 스스로가 쓸모 있는 것 같아 좋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고 누군가 봐주길 기대한다. 인스타에 올리지만 예전만큼 반응이 좋지는 않다. 금세 질려버린 걸까. 아니면 그때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그래도 좋다. 좋다 해주는 사람이 조금은 있다. 인정받는다 느낀다.

커뮤니티에 고마운 사람들이 늘어간다. 자신이 만들면서 드는 궁금증과 생각을 공유한다. 나아가 실험까지 해보곤 알려준다.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들이 보인 성의에 마땅히 보답을 해야 한다. 패턴플로우를 잘 키워가야 한다.

디스코드 커뮤니티에 공유된 LED 디퓨저 실험
디스코드 커뮤니티에서 공유된 LED 디퓨저 실험. 트레이싱지 두 겹만으로도 LED 점들이 훨씬 부드럽고 입체적으로 보였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일기 좀 쓰겠다.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된다. 이런 내용 읽어봤자 사실 좋진 않을 거다.

5월 29일은 내 생일이다. 평소에 생일을 잘 챙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몇몇 사람들이 축하한다 하면 조금 고마웠고 그보단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들 축하받던데, 나는 그러지 못할까 봐. 그리고 이번 생일은 단언컨대 최악이었다. 사람들과 깊게 얽히는 게 싫다. 무섭다. 선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자꾸 선을 넘는다. 좋은 것도 과하고 나쁜 것도 과하다. 좋은 건 괜찮지만 나쁠 땐 문제가 된다. 아주 큰 문제가 된다. 그러면 공포에 젖는다. 잘못이 너무나 확실해서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할 때, 사과를 해도 진심이 아니리라 보일까 걱정한다.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도망치면 그것대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

카카오톡의 생일 알람을 껐다.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으면, 특히 켜져 있으면 반드시 확인하고 축하해 줄 그 사람들한테 받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축하받으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는데, 축하를 받으면 스스로가 너무 싫을 것 같다. 버티지 못할 테다. 그치만 나만 잘못한 건 아닌데. 하 아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면 피곤하다. 이젠 너무 지친다. 길을 걸을 때 울컥한다. 밥을 먹다가 울컥한다. 밖에서 울 순 없으니까, 그러기엔 너무 쪽팔려서 최대한 참는다. 괜찮다 괜찮다 되뇌면서 빠르게 집으로 향한다. 현관문이 완전히 닫힌 순간에 와서야 마음이 풀린다. 이상하게도 참은 만큼 펑펑 울지 못한다.

사람들이 무섭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나를 싫어할까 무섭다. 그게 알던 사람이라면, 좋았던 관계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정말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서기 힘들었다. 그래도 돌아다닌다. 할 건 해야지. 수업에 간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온통 저녁에 있을 그 자리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찼다. 속이 울렁거린다. 조퇴하고 점심을 먹는다. 울 것만 같다. 먹다 남기곤 집으로 향한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 멘토링이 있다. 가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가자. 저녁을 생각한다. 무섭다. 이제 가야 한다. 아뿔싸, 조금 늦게 나와버렸다. 뛴다. 시간에 늦을 순 없다. 늦으면 싫어할 거다. 덥지만 뛴다.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겨우겨우 맞췄다. 앞사람이 끝날 때까지 10분 정도 기다렸다. 뛸 필요 없었다. 아니다, 시간은 맞췄다.

패턴플로우에 대해 소개한다.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대본도 없고 즉석에서 5분 내에 하려고 말을 빠르게 한다. 띵 하고 알람이 울린다. 5분이 끝났지만 절반이나 남았다. 전부 마쳤다. 마무리가 너무 갑작스럽다고 한다. 말이 너무 빠르다고 한다. 웃으면서 하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어떻게 발표를 하면 좋은지 모르지 않는다. 아주 잘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니 좀 보기 좋다고 한다. 실제 면접 때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거짓인 것 같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는 내가 조금 어색하다.

내용에 대한 조언도 많이 받았다. 너무 예술적이라고 한다. 창업할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숫자로 말하라고 한다. 어떻게 돈을 벌지를 구체화하라고 한다. 모른다. 패턴플로우는 상품을 팔아 마진을 남기는 구조는 아니다. 최대한 싸게 뿌릴 거다. 아니면 직접 만들게 시킬 거다. 돈은 돈 많은 사람한테 받고 싶다. 기업이나 예술에 돈 쓰는 부자들. 그치만 가능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하는 거다. 그래서 하는 거다. 그런데 자꾸만 증거를 대라고 한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있는 것처럼 만들라는데, 그건 거짓말하라는 거 아닌가. 화내고 싶었다. 거짓말은 하기 싫다고. 그냥 예술 쪽으로 하고 싶다고. 되든 말든 상관없다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이미 같이 함께해주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나운서 멘토분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신다. 나 자체를 브랜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게 더 좋아 보인다 한다. 패턴플로우를 왜 만드는지 물어보신다. 재밌어서, 나만의 패턴이 눈앞에서 빛나는 게 좋아서, 그걸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게 좋아서. 그걸 잘 설명해보라 하신다. 내 관점이 아닌,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멘토분이 마무리하며 한 문장이 있다. “미디어아트를 누구나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아 이거다 싶었다. 내가 패턴플로우를 공유한 이유가 그거였다. 다른 것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냥 하면 된다고, 내가 정리해 둘 테니 한번 해보라고, 그런 다음에는 너만의 걸 만들어보라고. 그거였다. 돌아와 예전에 적은 노트들을 볼 때 놀랐다. “만들기 쉽도록”이라는 표현이 수없이 적혀 있었다.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쉽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였는데. 쉽고 재밌게.

멘토링을 끝마쳤다. 이젠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야 한다. 전시 아트디렉팅 팀이자 공간, 기자재 담당이라서 해야 한다. 내가 천 사자고 했으니 해야 한다. 처음 가본다. 사람 많다. 다른 세상 같다. 주변이 온통 신기한 거 천지다. 가격을 흥정한다. 웃을 기분이 아니지만, 힘들지만 웃으며 말한다. 여러 군데를 돌고 돌아온다. 근데 돌아오는 답장은 얇아서 안 될 것 같다. 나도 안다. 내가 그렇게 신경 썼는데 모르겠냐. 당연히 알지. 근데, 그것보다 더 힘들게 하는 건 인정해주지 않는 거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그거 한마디 앞에 붙여주면 안 되나. 울음 참으면서 걸어다니고 억지로 웃으면서 지하철 타고 처음 가는 곳에 가서 노력하고 왔는데. 그냥 다 하기 싫어졌다. 밤에 있는 회의 때 그냥 난 이제 그만하겠다고 하고 싶었다. 정말 그러려고 했다.

돌아와 조금 앉아 멍을 때린다.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한다. 전시동아리 회의를 가야 한다. 나를 계속해서 괴롭힌 그거다. 너무 무섭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가 개발팀장이니깐. 하기로 했으니까. 갔다. 그냥 도망치고 싶다. 들어간다. 자리에 앉는다. 사람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다. 눈 마주치면 울 것 같다. 무섭다. 간식 좀 먹으라 한다. 먹으라니 먹는다. 토할 것 같다. 버틴다. 다들 반대편에 앉는다. 나만 동떨어진 기분이다. 싫다. 정말 싫다. 너무 싫다. 개발팀 진행 상황 발표한다. 모니터만 본다. 도저히 사람들 얼굴을 쳐다볼 수 없다. 끝났다. 도망치듯 재빨리 일어나 몰래 나간다. 옆에 앉았던 개발팀원에게만 인사를 짧게 하고 도망친다. 집에 간다. 힘들다.

헬스를 가려고 했다. 차라리 운동이라도 하면, 몸이 힘들면 정신이 힘든 건 모르니깐.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곧 비대면 회의도 있다. 집으로 간다. 제육을 시키고 재빨리 해치운다. 솔직히 비대면 회의도 하기 싫었다. 그냥 다 하기 싫었다. 나 이제 힘들어서 더 못하겠다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했지 않느냐고 말하고 그만두고 싶었다. 천에 대한 것도 더 어필하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소리 듣고 싶었다. 그치만 지쳐서 하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천 그냥 하지 말자고 한다. 왜일까, 마음이 편해진다. 웃음이 난다. 최악일 거라 생각했던 회의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뒤 해야 할 작업을 마무리한다. 천을 모듈 위에만 덮기로 한다. 그러니 훨씬 좋더라. 솔직히 좋다. 전체를 덮기 위해 계산하는 데에 들어간 시간이 많지만. 노력이 많지만 괜찮다. 이게 더 좋다.

그리고 패턴플로우의 패턴을 만든다.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한다. 이제 다 비슷하긴 하다. 도무지 새롭고 좋은 게 안 나온다. 반응이 좋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한다. 하루에 하나씩 만들면 뭔가 해낸 느낌이다. 이제 과제를 한다. 나를 탐구하고 삶을 짓는 기술이라는 수업이다. 이름만큼 내용도 특이하다. 이번 과제는 내 삶을 인터뷰하는 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 리스트를 앞에 띄워두고 말을 하다 보면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들이 온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먼저 불러줄 만한 사람. 같이 있고 싶은 사람. 함께이고 싶은 사람. 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어떨까 했다. 도무지 안 되더라. 비록 좋은 사람이진 않지만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러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내 편이 없을 것 같아서.

최근 상담에서도 꽤 깊은 내용을 다루었다. 빛나는 것들만 취하려고 한다. 누군가 인정해 준다고 느끼면 거기에 올인한다. 덜 인정받는 건 가차 없이 버린다. 다른 사람이 엮여 있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혼자만의 것은 가차 없다.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너무 극단적이다. 왜 그럴까.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무섭다. 힘들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한다. 떠올려보라 한다. 내가 만든 작품을 누군가가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떨 것 같고 어땠냐. 기분은 나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본질은 다른 거에 있으니. 작품이 틀린 게 아니라 해석이 틀린 거니까.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적용하지 못할까. 왜 꼭 인정받아야 할까. 시간이 끝나 멈췄지만 답은 알고 있다. 스스로가 무가치하다 느낀다. 본질이 없다고 느껴서 외부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것마저 없으면 스스로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다.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라고 조언을 해줬었다. 그러면 된다고.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이젠 그만큼 친해지기 무서운데. 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

이런 글을 여기 올리는 것 자체도 스스로 의아하다. 일기에나 적을, 어쩌면 일기에도 적지 않을 내용을 아주 많이 토해내고 있다. 나 지금 힘들어요 라는 걸 크게 외치고 위안이라도 얻고 싶은 걸까. 누군가 알아봐 주길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다. 일단 패턴플로우에 집중할 듯싶다. 다들 인정해 주니까. 멋지고 가치 있다 해주니까. 이렇듯 탄생시킨 창조물 중 빛나는 것들에 나를 의탁하여 살아가려나. 아닌 것들은 으레 그렇듯 쉽게 버려버릴까. 그렇게 스스로 버려질까 매사 무서워하며 살아갈까. 혹시나 어떤 믿음이 생긴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백남준이 선불교를 믿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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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Crowd Supply에 들어가서 확인했는데, 최종 승인, 채택되었다. 그래서 곧 계약도 진행할 것 같다.

어제 생일이었는데 딱 그때 왔다. 그래, 이 글을 쓸 때. 힘들다고 쓰던 바로 그때 딱 왔다. 정확하게 시간이 맞았다. 생일선물 같다.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다. 이제 이걸로 다다음 주에 있는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최종 면접 프레젠테이션도 무조건 될 것 같다. 너무 좋다. 진짜 존나 힘들어질 거 뻔한데 너무 좋다.

Crowd Supply 계약서 상단 내용
계약서 맨 윗 문단. 5월 29일, 패턴플로우.
Crowd Supply 계약서 서명 화면
서명까지 완료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