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나, 패턴플로우

함께한다는 것.

이 글은 백남준의 초기 참여 작업 〈참여 TV〉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나의 작업 〈Patternflow〉를 중심으로 한다. 우연히 본 백남준 서거 20주년 행사부터 시작하여, Patternflow가 탄생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과 이어진 과정을 적어냈다. 동시에 바라는 삶의 방향과 태도를 백남준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다. Patternflow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의 대중화를 위한 LED 오픈소스 신디사이저이자, 생태계다.

1. 들어가며

26년 1학기에 수강 중인 한국근현대작가론 수업의 기말 리포트이기도 하다. 다만 보통의 작가론과는 다르다. 에세이에 가깝고, 26년 1월부터 6월까지 내 삶의 전부였던 Patternflow의 다음 단계를 위한 정리이기도 하다.

올해 1월, 백남준 아트센터에 처음 가게 되었다. 본래 목적은 그곳에서 진행 중인 다른 작가의 전시를 보는 것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후 센터에 상시 전시되는 백남준의 작품들도 직접 체험하고, 우연히 서거 20주년 기념 행사를 보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미디어아트 작가로 데뷔하고 1년 안에 개인전을 열겠다는 포부와 함께 첫 번째 작업을 궁리하고 있었다. 여러 실험을 진행했고 그중 하나가 유독 반응이 좋았다. 기회라 생각되어 발전시켜 나갔고, 그것이 지금의 Patternflow다. 이제는 오픈소스로서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으며, 첫 창작자로서 기반과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할 책임을 느끼고 있다.

올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3학년 1학기도 전부 작가 중심으로 채우고자 했다. 관련 수업들을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백남준을 분석하게 되었다. 주목한 것은 소통이었다. 그리고 이 글과 Patternflow에는 두 가지 소통의 흐름이 흐르고 있다. 첫째는 전 세계의 낯선 이들과의 소통이며, 둘째는 나 자신과의 소통이다. 백남준을 분석하는 일과 스스로를 분석하는 일을 나란히 진행했다. 결국 Patternflow를 잘 키우는 것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시도가 되었고, 이 글은 그 두 흐름이 맞물리는 자리를 찾고자 함이다.

2. 백남준에 대한 생각

백남준은 TV를 활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를 알아주는 예술가로 만든 〈TV 부처〉가 있고, 압도적 규모의 〈다다익선〉이 있고, 소통을 전면에 내건 후기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글로벌 그루브〉가 있다. 다만 후기작에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이미 유명해져버린 이후에 만든 작품들이고, 거대한 규모가 주는 압도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초기작에는 오히려 본질만 남아 있다 느껴져 끌렸다. 아무것도 없던 시기였기에 더욱 순수하게, 하고픈 것들만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일관된 주제는 소통이었다. 관객이 작품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고, 일방적인 기술을 부수고 해킹하여 양방향으로 변주했다. 왜 하필 소통이었을까. 추측해본다. 백남준은 여러 언어를 구사했지만 어느 것도 완벽히 유창하진 않았다고 한다. 다큐에서 들은 그의 영어도 한국어도 어딘가 이질적이다. 누군가는 그가 ‘백남준의 언어’를 썼다고 말한다. 그만큼 특이했고,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문자와 말이라는 언어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이 적었을 테다. 그 결핍에서 소통에 대한 욕구가 생겼고, 작품에서는 관객의 참여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그에게 참여는 미학이기 이전에 그만의 대화법이자 소통의 우회로였다.

동시에 그는 우연성을 사랑했다. 그가 심취해 있던 선불교의 ‘지금 이 순간’은 계획대로 오지 않고 그냥 온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연습된 채 완성된 무대에 오르는 주류 예술이 그에게는 답답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관객과 기계의 역할과 반응에 우연을 부여했다. 생명은 완벽하게 통제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에 있다는 믿음이다. 어쩌면 작품뿐 아니라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일관된 태도처럼 보인다. 타인과 자신을 대할 때에도 통제하려 들지 않고 그저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러한 성향이 그를 지극히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기술로 만든 작품들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백남준의 삶의 태도가 부러워진다. 그는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오노 요코는 그의 장례식 추모 연설에서 “백남준은 어려울 때마다 정신적으로 의지한 내 마음속의 부처였다”고 했다. 미디어 속 그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고 아이 같으며, 괴팍하면서도 친구가 많아 보였다. 자기 자신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의아한 부분도 있다. 당시 한국 최고의 재벌가 막내로 태어나 그 특혜로 유학까지 간 사람이 어떻게 가난하게 살 수 있었는지, 왜 그런 삶을 택했는지 모르겠다. 그를 인정받는 예술가로 만들어준 부처 불상을 부수는 작업도 특이하다. 직접 기획했으면서 정작 목을 치는 그 순간에는 타인에게 맡기고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부처를 모아 그 덕에 성공한 사람이 부처의 목을 치고, 정작 그 순간엔 자신은 도망치는 모순이 백남준의 인간성을 더 극대화한다.

도대체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주변에서는 그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다. 정작 그는 무관심했다.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지금의 나로선, 그 무관심이 가장 부럽고 가장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다.

3. 나라는 사람

지금 내가 믿어온 것들을 부숴야 한다고 느낀다. 백남준의 살불살조처럼, 혹은 칼 융의 《레드북》 초반에 나온 것처럼. 나의 영웅을 죽이는 일이다. 그 이유는, 정말 되고 싶은 사람, 누군가 먼저 놀자고 불러주고, 아무 이유 없이 함께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2년쯤 이어온 심리상담에서 무언가 실마리를 얻은 느낌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이분법적으로 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빛나는 것만 쥐려 하고, 아닌 것은 판단을 재고할 기회조차 없이 버려버린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똑같다. 관계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로만 받아일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려 든다. 애매하면 차라리 싫다 쪽으로 몰아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 결국 “일을 잘하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까지 생겨버린 느낌이다. 자꾸 후자를 가차 없이 버리려 든다.

작품과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도 특이하다. 내 작품이 비난받고 비판받는 건 견딘다. 아무리 교수여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네가 뭘 알아’ 하고 무시한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기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건 견디지 못한다. 작품에는 의도와 무시라는 갑옷을 다 입혀놓고, 정작 스스로는 맨몸으로 세워두었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누군가의 말에서조차 무너져버린다. 내가 만든 작품들은 자랑스럽게 세워두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상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성과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틀린 건 아니라고, 나 스스로만 괜찮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삶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대화하고 지켜본 바로는, 내가 바라는 삶은 그게 아니라고. 알고 있다. 나는 그냥 함께할 사람이 많은 삶을 바란다. 언젠가 누나들과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넌 혼자서도 열심히 살 수 있는 게 대단하다, 부럽다, 나는 그냥 친구 만나고 논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강을 걸으며 그 문장을 계속 되씹었다. 나도 그냥 너희처럼 자주 놀고 싶다고, 아무도 안 불러주니까 열심히 살 뿐이라고. 그래야 누군가 불러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너희는 나를 대단하다 하고 부럽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너희를 아주 많이 부러워한다고.

백남준은 남의 시선을 포기한 순간 자유로워졌다는데, 정확히 그 반대편에 내가 있다. 항상 멋지고 유능하게 보여야 하고, 그것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나를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자유를 배우진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 어쩌면 그는 신경을 끄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집중할 무언가에 몰입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Patternflow’가 나에게는 그 ‘무언가’라고 느껴진다.

4. Patternflow

Patternflow는 손끝으로 연주하는 오픈소스 LED 신디사이저다. 노브를 돌리면 LED 매트릭스에 적용된 creative coding 패턴의 흐름이 변한다. 빛은 더 이상 바라보기만 하는 시각 효과를 넘어, 손끝의 촉감과 연결된 다감각적 경험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기기가 아닌 생태계로서, 그 핵심은 “만들기 쉽게”다. 백남준의 〈참여 TV〉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참여 TV〉가 관객의 참여를 예술로 들였다면, Patternflow는 창작을 모두의 손에 쥐어주고자 한다. 관객이 작품을 조작하는 걸 넘어, 창작자가 되어 만들고, 고치고, 공유한다. 그래서 하나의 오브제에 그치지 않고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의 대중화를 향한 생태계가 되었다.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자료와 가이드를 깃허브에 오픈소스로 공개해 두었고, 이를 통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당장 기기가 없더라도, 웹사이트의 AI 패턴 생성 시스템과 시뮬레이션으로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연주할 수 있다. 창작을 쉽게 만드는 것, 그게 Patternflow의 전부다.

5. 어떻게 시작되었나

처음에는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원래는 3D 프린팅 기반의 예술-테크 프로젝트였고, 기대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LED 매트릭스에 올리면 좋겠다는 동생의 말을 들었고, 그게 전환점이 되었다. 떨떠름했던 실험이었지만, LED 매트릭스의 레트로한 빛과, 거기 연결된 가변저항을 돌려 바꾸는 매력이 나를 매료시켰다. 이후 다양한 실험을 거쳐 휴대 가능한 미니멀 아트 오브제 형태로 빚어졌다. 인스타에 올린 콘텐츠와 아두이노 서브레딧에 올린 글이 연달아 좋은 호응을 얻었는데, 구매하고 싶다는 댓글보다 만들고 싶다는 댓글이 더 눈에 띄었다. Patternflow가 누군가의 호기심과 창작욕에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오픈소스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오픈소스로 전환한 다른 이유도 있다. 혼자서는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걸 하며 생애 처음으로 납땜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동아리방에서 밤 11시까지 납땜을 고쳤다. 첫 PCB도 그렇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말과 잠을 전부 바쳐 겨우 해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여러 영역에서 보이는데, 이걸 혼자 하는 건 내 수명을 깎아먹는 짓이라 생각했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오픈소스로 했다. 그러자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수많은 응원 댓글부터, 실험 비용을 직접 지원해준 PCBway,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공유하고 패턴 생성의 한 기능을 개발해주고 있는 콜라보레이터, 직접 만들고 실험한 결과를 디스코드에 공유해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전부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예술가가 되고자 했을 때 가장 답답했던 것이 과정의 부재였다. 성과와 결과는 많지만, 그걸 이루기 위한 노력과 고생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재밌는지 알 수 없으니, 예술가라는 선택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Patternflow를 통해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끔은 너무 투명해서 의도보다 일기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자기만의 것을 만들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계속 글을 적고 있다.

6. 지금의 상황

6월 7일 지금, Patternflow는 사업의 경계에 발을 들이려 한다. 예술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메이커로서, 예술가로서를 넘어 사업가로서, 메인테이너로서의 태도를 갖추고자 노력 중이다. 생태계를 잘 키워서, 훗날 내가 떠나 다른 작업을 하게 되더라도 알아서 살아남도록 만들고 싶다. 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여러 가지 패턴과 오디오 리액티브 기능 등을 실험해 보았고, 이제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생태계에 새롭고 다양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다져야 한다.

패턴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적고자 한다. 첫 번째 진입로는 지금까지와 같이 AI를 활용한 패턴 생성 기능으로 유지할 것이다. “만들기 쉽게”라는 모토에 맞춰, 코드를 작성하지 못하는 초보자도 자신만의 패턴을 창작하는 경험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직접 해서 보여주는 게 가장 직관적이다. 그래서 매일 1~2시간씩 AI와 대화하며 다양한 패턴을 만들고 인스타에 릴스 콘텐츠로 올렸다. 그렇게 약 30개가 쌓였다. 패턴을 만드는 동안에는 어려웠지만, 사실 쉬운 작업이었다. 매일 의식처럼 반복하기만 하면 됐으니. 며칠 전, 가지고 있던 Patternflow들이 고장 났다. 아무래도 이건 충분하니 그만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30개의 패턴들
30개의 패턴들

AI 패턴 생성 위에 자신만의 이미지나 문자를 올리는 기능은 콜라보레이터가 만들어 주고 있다. 그 부분은 믿고 맡긴 채 콜라보에 집중하고 싶다. Patternflow에 관심을 보여준 뮤직 프로듀서들, 그리고 픽셀 아트·creative coding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싶다. 아무래도 그들이 헤비 유저가 되어줄 것 같고, 그래야 생태계가 자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떻게 접근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우선 5월 29일 내 생일날 계약한 크라우드 서플라이의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과 각종 비즈니스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많이 겁나는 상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예측·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재밌다.

7. 함께하는 거

본래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다. 그걸 넘어 독재적인 사람이다. 스스로를 판단하는 잣대를 남들에게 들이대며 통제하려 든다. 모든 팀 프로젝트는 두 가지 결과로 귀결되었다. 먼저, 주도권을 꽉 움켜쥐고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경우. 성과는 좋지만 사람은 남지 않는다. 더 문제는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린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당연하게도 사람은 남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이해관계를 맺는 것이 두렵다. 그 끝에는 반드시 사람이 없으리란 걸 학습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Patternflow의 방향은 남을 위하는 동시에 나를 위한다. 가장 어려운 일, 사람과 공동체를 끌어안고 불확실성을 견뎌보려는 시도다. Patternflow의 남은 절반을 타인에게 맡기고 함께 가보려 한다. 계속 불안하고 힘들겠지만, 그래서 버리고 싶겠지만,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온 것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디어를 제안해준 동생, 아낌없는 격려로 힘든 납땜과 회로도 작업을 견디게 해 준 레딧의 사람들, 먼저 스폰서십을 제안해 준 분, 하드웨어 문제로 도와달라 글을 올렸을 때 친절히 답해준 사람들, 그 외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기쁜 순간은 누군가 자신이 만든 걸 공유하고 물어봐 주는 순간이다. 일방적인 인정이 아니라 함께한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정말 바라는 것임을 이제 안다. 여기서 백남준과 만난다. 그가 소통의 결핍에서 참여를 만들었듯, 나도 나만의 참여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을 작업대 앞에 앉히고, 그 곁에 한 명의 참여자로서 끼어 앉고 싶다. Patternflow가 정말로 살아 있는 생태계가 된다면, 단순한 오픈소스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던 관계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는 증거이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집이 된다.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인, 세계적이면서 고독한 소통이 만나는 자리다. 어쩌면 그 둘은 다르지 않다.

8. 마무리하며

그래서 Patternflow는 한 사람의 간절한 발버둥이다. 당장 빛나지 않더라도 기다리고자 한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누군가 먼저 불러줄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 자신으로서, 또 다른 자신들과 함께 살고자 한다. Patternflow에서 그러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면, 안주하지 않고 또 나아갈 것이다.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여럿 있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럴 때 살아 있다고 느낀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