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다

낯설게 보기

이번 주는 한 게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 패턴플로우 홍보를 위해 레딧에 글들을 올리고, 매일 패턴을 만들어 인스타에 올린 뒤 디스코드에도 정리해 올렸다. 최적화를 위해 펌웨어 코드 구조를 다시 잡고 OSC 통신 기능도 추가했다. 판매를 준비하느라 원가도 다시 계산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무언가 멈춰 있는 기분이 든다.

크라우드 서플라이에 다시 들어가 봤다. 되기 어렵다고 들었던 탓에 기대가 적었어서, 신청하고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신청한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와있더라. 왜 완제품이 아닌 키트로 가는지,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제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물어왔다. 꽤 긍정적인 시그널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로 답장을 보내놨는데 3일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회신이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내가 답장을 4일 지나서야 한 게 늦어버린 걸까 싶다. 하루에도 두 번씩 크라우드 서플라이 사이트에 들어가 답글이 달렸는지 확인하고 있다.

견적도 제대로 짜봤다. 알리산 견적은 이제 버리고 제대로 된 게 필요했는데, 어렵고 비싸더라. PCBA가 가장 중요했고, 그중에서도 로터리 엔코더 가격이 수십 배가 올랐다. 그래서 일단 비싼 것 하나, 그나마 저렴한 것 하나 소량으로 사서 패턴플로우 PCB에 문제없이 들어가는지 테스트해보고, 작동하면 바로 PCBA 주문을 넣어보려 한다. 하여간 실험비가 너무 많이 든다. 돈이 없어서 문제다.

아트코리아 랩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피지벤처스 김종현 본부장님께 조언을 듣고 있다. 조언대로 원가에 인가공비도 추가하고 worst case로 계산해 보니 16만 원이 나왔다. 판관비와 결제수수료까지 더하면 원래 계획대로 $129에 판매할 경우 국제 배송비를 빼고도 손해다. 그래서 걱정이 많다. 하지만 줄일 여지는 많아 보인다. PCBway 쪽에서도 스폰서십을 해주기로 했어서 이야기를 잘 풀어봐야 하고, 가장 비싼 3D 프린팅도 외주 대신 학교 메이커스페이스를 활용하면 줄어든다.

그렇지만 기대만큼 빠르게 가지는 못할 것 같다. 구매하겠다 설문해주신 70분 중 20분 정도에게라도 한 달 안에 패턴플로우를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어렵다. PCBA 주문이 받기까지 약 25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 테스트하고 검증을 마친 다음 들어가야 할 듯싶다. 그동안 기다리는 시간엔 패키징 디자인도 해보려 한다. 전에 다른 선배 디자이너한테 부탁하려 했는데, 공짜로 부탁할 순 없고 돈이 없으니 일단은 내가 해보지 않을까 싶다.

좋은일도 있다. 패턴플로우의 첫 콜라보레이터가 생겼다. Zhuoran. 패턴 생성, 특히 이미지2패턴 변환 쪽에 관심이 있다. 작업의 결이나 사용 툴들을 보았을 때 패턴플로우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먼저 연락을 줘서 고맙다. 콜라보레이터 제안은 내가 했는데, 사실 쉽지 않았다. 오픈소스다 오픈소스다 하면서 내가 만든 작업물을 공유하는 건 쉬웠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 걸 보고 활용하며 배웠으니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콜라보레이터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싶었다. 많이 불안하고 여러 형태의 걱정이 떠올랐다. 이에 대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어 AI한테 물어봤다. "다 망가지면 복구 가능해?", "수익 분배는 어떻게 해야 해?" 같은 쓸데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 실컷 걱정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다시 내 템포대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고, 진정한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된 것 같아 좋았다. 2일 전 국제배송 테스트와 함께 주란에게 패턴플로우 OG 중 하나를 보냈다. 수중에 있던 2개 중 멀쩡한 하나를 보낸 거다. 그래서 인스타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보면 다시 모서리 LED 몇 개가 빠진 첫 번째 패턴플로우로 찍고 있다. 배송비가 엄청 비싸더라. 한 3만 원 나올 줄 알았는데, 걱정되어 뽁뽁이를 10겹 한 탓인지 6만 원이 나왔다.

또 다른 도움도 받게 됐다. 3D 프린팅을 최성권 교수님이 도와주시기로 했다. 기존엔 P1S에서 뽑기 때문에 사이즈가 안 맞아 패턴플로우를 분리해서 출력했었다. 그런데 한 번에 가능할 것 같다고, 직접 리버스 엔지니어링 해서 통합 출력이 가능하게, 그리고 추가로 디테일적인 부분들도 손봐 만들어보시겠다 한다. 그쪽 분야의 전문가시기 때문에 믿고 있다. 추후 워크숍도 진행하기로 했는데, 내가 돈을 막 드리지도 못하는데 도와주셔서 고맙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부분이 분명하다. 슬슬 패턴플로우를 만드시는 분들이 생겨난다. 아마 갑자기 많이 생기시지 않을까 싶다. 이분들을 모아 둬야 한다. 흩어지게 두어도 괜찮지만, 패턴플로우 오픈소스 생태계에 있어 정말 귀중한 인재들이다. 그들이 패턴을 만들고 공유하고 자기 입맛대로 손보며 공유하는 그런 장을 만들어야 한다. 깃허브 페이지도 기여하기 쉽게 안내해야 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도 더 잘 가꿔야 한다. 이제 개발자에서 정원사가 되어야 하는 거다.

그러려면 낯설게 봐야 한다. 지금의 나는 패턴플로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당연한 것들이 너무 많기에, 이를 버려야 한다. 아예 처음 보는 시각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오픈소스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며 개선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다른 오픈소스들에 기여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 가져다 쓰기만 했었다. 아마 시각적인 게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을 보완해서 해보자. 어쨌든 나도 시각 디자이너니까. 재밌을 것 같다.

그러면서 기존에 신경 쓰지 못했던 문서들도 전부 손을 봐야 한다. BOM을 재계산하다 찾은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HUB75를 꽂을 2×8 커넥터가 실제론 버티컬인데 호리즌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지가 아닌 BOM 리스트만 보고 재료를 구매하신 분들은 재주문 해야 하는 상황일 거다. 많이 미안하다. 내가 신경을 조금 덜 썼다. 이런 자그마하지만 사용자 경험에 치명적인 결함들을 전부 채워야 한다. 디테일을 손봐야 한다. 전체 구조도 바꿔야 한다. 어렵다. 뭐 해보자.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