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중

흩어진 신경을 다시 모으며

자책할 시간 따위는 없다.

오랜만에 글을 적는다. 2주 만인가? 시험 기간이었고, 그 외의 일들로 신경이 많이 분산되었다. 지금도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는 아니다. 더 미룰 수는 없기에 일단 알고 있는 선에서 적어보고 치고 나가려 한다. 그래서 이번 글은 과정보다 결과 위주가 될 것이다. 패턴플로우와 관련한 내용부터 정리하고, 그 곁가지에 있는 사건들도 간략히 남긴다.

우선 전시를 하고 있다. 패턴플로우를 학업과 연계시켜 하나의 프로젝트로 키워볼 수 있었던 수업, 작가적 디자인 스튜디오(1)의 전시다. 아주 많이 공들였다기엔 애매하다. 애초에 그럴싸한 결과물이 만들어진 지는 오래됐고,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은 그 뒷면에 있는 더러운 과정들이다. 그래서 작업을 진행하며 적었던 모든 글과 과정을 수집했다. 그리고 전시에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내용만 제외하고는 거의 다 뒷면에 붙였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작업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정리하기도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전시 철거를 진행해야 한다. 귀찮다.

전시 전경과 준비한 자료들
작가적 디자인 스튜디오(1) 전시 전경과 작업 뒷면에 붙여둔 글.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입주기업이 되었다. 아직 사업자등록은 하지 않았고,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룰 예정이지만, 일단 입주기업 최종심사까지 합격했다. 센터에서 1차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멘토링을 받아 사업계획서와 피칭 전략을 개선했다. 너무 예술적으로 가고, 센터가 뽑아야 하는 이유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유만 늘어놓는 느낌이라며 자신을 좀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숫자가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언짢았다. 아직 사업의 방향성도 정해지지 않았고 모든 방면으로 열어두고 있고, 구체적인 숫자를 찾아도 그게 똑같이 적용되리란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굳이 찾아서 넣으라는 게 뭔가 거짓말을 치라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사업은 원래 그런 거라고 하더라. 어쨌든 반영해서 고쳤다. 이어진 다른 VC와의 멘토링에서도 더 개선하라 해서, 더 고쳤다.

그리고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하고 또 했다. 뭐 특별히 잘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저 열심히 외웠고, 툭 치면 바로 문장이 나오게 외우고 또 외웠다. 5분 피칭을 진행하고 7분간 질의응답을 했다. 발표야 뭐 기세로 자신감 있게 했다. 질의응답은 쉽지 않더라. 사업적으로 이게 정확히 어떤 사업인지, IP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공격적인 질문을 하신다. 마지막에는 시작한 지 2개월 정도라 앞으로 진행하며 개선해 보겠다는 식으로 꼬리를 내렸다.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붙었더라.

학생 혼자서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 입주한 건 특이 케이스 아닐까 싶다. 아직 이후 일정에 대한 안내는 못 받았지만, 나름 잘 된 것 같다. 원룸이 작업실이라 공유 오피스를 자주 쓸 것 같지는 않지만, 멘토링이나 지원 프로그램은 열심히 참여하자.

크라우드 서플라이 펀딩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3D 모델이나 PCB를 개선하고 있다. PCBway를 통해 3D 프린팅을 한 번에 출력해보기도 했다. 테스트용이다. 만들어진 결과물이 영 시원찮기는 했지만, 애초에 모델링 자체를 개선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내가 안내를 제대로 보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어쩔 수 없다. 대신 굉장히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이 되긴 했다. 비싼 배송비를 납득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나는 PCBway의 스폰서십을 받아 진행해서 비용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좋게만 적을 수는 없으니, 솔직하게 남겨두는 거다.

PCBway 배송 상태
아주 안전하게 포장되어 배송된 모습.
PCBway 3D 프린팅 출력 결과물
그 결과물, 준수하게 나온 모습.

3D 모델링은 계속해서 개선하고 있다. 결국에는 PCBway에서 출력하고, PCBA도 하고, 포장까지 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지만, 테스트는 로컬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홍익대 메이커 스페이스와 교수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부터 더 복잡한 최적화까지 직접 해주실 듯한 뉘앙스였지만, 결국은 내가 모델링을 다시 전부 하고 출력 테스트만 해주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든 일이 이렇다. 결국에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따로 고용을 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도 더 집중해야 하는 업무가 생기고 상황이 달라져서 기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이는 호의와 실질적인 도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실망하지는 말고 직접 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는 데 집중하며 진행한다.

모델을 많이 수정했다. 특히 내부를 덮는 부품들의 결합 방식에 공을 많이 들였다.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실험했다. 그리고 계속해 나가야 한다. 돌아보면 이때가 제일 재밌다. 머릿속이 온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런 방식도 떠올리고, 다른 방식도 떠올리고. 굉장히 머리가 아프면서도 집중하는 그 느낌이 좋다. 어쨌든 지금 앞쪽 배터리 부분은 쉽게 열리는 슬라이딩 형태로, 뒤쪽은 꽤 복합적으로 해서 탄탄하게 고정되면서도 쉽게 분리 가능한 형태로 해 두었다. 물론 실제로 출력해보고 예상대로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실 정석은 작은 버전으로 만들어 프로토타이핑을 계속하는 건데, 그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제발 잘 되기를 빌자. 출력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자.

Blender를 이용한 3D 모델링 설계
블렌더 3D에서 구조 설계를 개선하는 모습.

PCB는 정말 허탈하면서도 좋은 변화가 생겼다. 전시를 진행하는데, 하루 만에 패턴플로우가 고장이 나서 맛이 가버렸다. 꽤 험하게 다룬 모델이었고, 그래서 납땜에 문제가 많이 생겼나 싶었다. 그때 디스코드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인코더의 캡과 저항을 떼도 문제가 없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다. 애초에 그것들을 넣은 이유는, PCB를 처음 만들어볼 당시에 AI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물론 있다고 나쁠 건 없지만, 아니다, 제작 비용 측면에서 나쁘다. 최소한 없는 버전을 테스트해봐야 했는데, 그걸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그 이유는 이렇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AI에 과의존했고, 이후 거기 들어간 시간과 수고가 쌓여 어떠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납땜을 하면서 아주 많이 고생했기 때문에, 그게 필요 없을 거란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떼고 돌려보았을 때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PCB의 모든 SMD를 제거했다.

제작 비용 측면에서도 좋고, 더 좋은 건 교육 목적의 키트로 팔거나 워크숍을 진행할 때 납땜을 넣어도 된다는 거다. 이전에 0805 SMD가 있을 때엔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아예 하드웨어는 빼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없어지니 다른 큰 납땜은 사실 어렵지 않고 오히려 재밌는 요소가 된다. 아닌가? 모르겠다. 어쨌든 SMD를 제거한 버전으로 다시 견적을 내보고 테스트 주문을 해보려 한다.

디스코드 공유 글 이미지
인코더 캡과 저항을 제거하고도 정상 동작함을 확인한 뒤, 허탈함과 좋은 감정을 공유했던 디스코드 글과 이미지.

3D 프린팅과 PCB를 최적화하면 기존의 129달러라는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에는 원가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아니 뭐, 아직은 모른다. 계속해봐야지.

깃허브 이슈도 정리하고 있다. 오픈소스답게, 참여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진행 과정을 개인 노션에만 저장하는 게 아니라, 깃허브 프로젝트 같은 걸로 다른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제대로 하려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던데, 그 비용만큼의 보상이 나올지는 모르겠어서… 일단 계속해보자.

패턴은 사람들이 막 만들어주기도 해서 좋다. 기쁘다. 그리고 최근 만든 패턴이 바이럴이 되어서 반응이 좋다. 좋은데, 왜 다른 것들은 안 뜨는지 그 차이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계속 만들어야 하나? 근데 요즘은 패턴 제작에 힘을 조금 빼고 있다. 애초에 30개 정도 만들면서 원래 목적은 어느 정도 이뤘기 때문이다.

이제 곁가지에 있는 사건이다. 올해 초부터 개발팀장으로 진행해 온 XR 연합동아리를 나왔다. 깔끔하게 나오진 못했고, 충동적이며 부정적인 방식이었다. 시험 기간과 패턴플로우(피칭 준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안정감의 상실과 믿었던 개발팀원의 이탈이 겹치니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다. 나가겠다고 해놓고선 잠이 도저히 오지 않아 그냥 남겠다고 번복한다. 하지만 이미 신뢰는 깨졌기에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끝났다.

해주기로 한 개발 가이드 제작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미 나온 마당에 하는 것도 이상하고, 할 경우 복잡해지는 권리 문제가 신경 쓰인다. 또한 수차례의 피드백을 통해 기획에 반영된 나의 의견이 있지만, 그건 깔끔하게 잊으려 한다. 더 신경 쓸 순 없다. 내 일에만 신경 쓰려고 한다. 뭐,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이미 자책은 할 만큼 했다. 그 사람들에겐 이미 나쁜 사람이 되었을 테고, 내가 어떤 행동을 더 한들 개선되는 일은 없다. 지금까지 있었던 비슷한 상황에서 배운 거다. 이미 저질렀으면 수습할 수 있으리란 괜한 행복회로 돌리지 말고, 잊어버리고 할 것에 집중해야 한다.

상담 선생님은 이를 꽤 중대하게 보시는 듯했다. 그리고 남은 상담 기간 3회 정도로는 고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음 주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일단 할 것에 집중하다 여유가 생기면 다시 제대로 하자.

상담사님께서는 내가 감정을 가지고 있지를 못한다고 한다. 그게 너무나 불편해서 당장 뱉어버려야 하고, 그 방식이 내가 바라는 모습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스스로에 대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한다’는 판단도 틀렸다고 한다. 불편한 걸 견디지 못하고 버린 뒤 다른 걸 하고, 근데 또 거기서 성과를 수월하게 내서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거라고 한다. 어쩌면 그런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공군사관학교를 나올 때에도 그 안에서의 불편함, 특히 사람 간의 불편함이 컸고, 최근의 이슈도 사람 간의 불편함이 매우 컸다. 그래서 스스로의 감정을 잘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게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정도로 이번 글은 마무리한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