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긴 했나 봐

의식의 흐름대로

요즘 지쳐서 기운이 없다. 그래서 패턴플로우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작업들을 미루고 있다. 패턴 생성 가이드 정리, 패턴플로우 소개 영상 기획 및 제작, 빌드 가이드를 포함한 문서 정리 등등. 크라우드 펀딩용 v3에 들어갈 PCB 테스트 주문도 방금 생각나서 주문하고 왔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진전이 없진 않다. 크라우드 서플라이용으로 v3를 만들고 있고, 거의 다 된 것 같다. 인클로저도 이 정도면 훌륭하고, PCB에 전원 공급을 위한 C타입 어댑터도 추가하였다. 그리고 테스트해본 결과 잘 되더라. 다만 C타입 어댑터의 납땜 난이도가 너무 어렵기에(한 번 쇼트 내서 태워먹었다) 기존의 2핀 스크류를 다시 추가한 버전으로 개선했다. PCB를 직접 주문해 납땜해 만드는 커뮤니티 유저를 위함이다. 하는 김에 모듈들 위치를 전반적으로 수정하고 전체 크기도 줄였다. 생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했다. 사실 인클로저 3D 모델은 개선할 점이 더 보이긴 한다. 뒷면 스냅핏 부분이 현재는 약하기에 보강이 필요하고, 엔코더들의 위치도 정확하게 비율을 재서 재조정하면 좋다. 좋은 게 아니라 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안 하면 언젠가는 해야 하는 작업이고, 이런 건 미리 할 수 있는 한 빨리 해두어야 좋으니까. 그리고 커뮤니티용 모델도 인클로저와 접합하는 부품을 개선해야 한다.

USB-C 전원 공급 어댑터가 추가된 패턴플로우 v3 PCB와 새로운 인클로저
USB-C 전원 공급 어댑터가 추가된 패턴플로우 v3 PCB와 새로운 인클로저

따라서 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한다. 나름 성실하게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고, 나가기 싫은 날에도 생각을 멈추고 움직였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된다. 최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오는 탓에 러닝을 하지 못한 게 원인일까? 아니면 요즘 종이에 손으로 끄적이는 시간이 없었는데, 그래서일까? 단순히 지쳐서겠지 뭐. 게임도 끊고, 웹툰도 끊고, 매일 작업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며 생활한 지 벌써 반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유튜브도 보고, 요즘엔 피아노랑 사운드도 다시 공부해보고 있는데. 그건 휴식이 아닌가. 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버틸 순 있을까?

요즘 피아노와 사운드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어렵긴 하지만 재밌다. 피아노는 독학을 위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하루에 30분 정도 따라 치면서 연습하고 있다. 사운드는 올해 초에 구매했던 Andy Farnell의 『Designing Sound』를 보고 에이블톤 슈트의 Max for Live로 따라해보고 있다. 아 근데 나 이 책 구글 스토어에서 10만 원인가 주고 샀는데, 무료 PDF 바로 나오네… 뭐 수업료라고 치자. PDF 있는 줄 알았으면 학기 중에 번역한답시고 일일이 캡처해서 제미나이한테 주고, 번역한 거 복사해서 정리하고 막 그런 노가다들도 안 해도 됐었겠네… 흠.

어쨌든 되게 재밌고 어렵다. 최근 패턴플로우로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 입주했고, 그래서 공용 오피스가 생겼다. 되게 쾌적하고 넓어서 좋다. 원래는 원룸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라 거의 가지 않고, 기존처럼 집이 곧 작업실일 것 같았다. 근데 동선이, 점심에 학교 들러서 학식 먹고 가고 저녁에 돌아올 때 또 학식 먹고 오면 나쁘지 않아서 그렇게 가고 있다. 거의 안 갈 생각이었는데 아마도 개근할 것 같다. 자리도 되게 좋다. 그리고 집이 아니다 보니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운드 공부에 적격이다. 공부하면서 머리가 아파온 건 오랜만이다. 아 그건 아닌가? 어쨌든 딴짓하기가 좀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다만 휴식 공간이 좀 있었으면 한다. 누워서 눈 좀 붙일 만한 곳 말야.

서울디자인창업센터 공용 오피스의 작업 공간
서울디자인창업센터 공용 오피스의 작업 공간

각자의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멋진 분들이 모인 좋은 공간이다. 다만 내가 잘 녹아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 공간에 있는 내가 너무 어색하다. 딱히 일이라고 할 게 없어서, 가서 공부만 하고 있다. 사운드 공부를 하다 지치면 책 읽고, 질리면 다시 공부하고… 사실상 오피스가 아니라 스터디 카페로 사용 중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잘 못하겠다. 왜일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도 딱히 아닌데? 평소에 먼저 말 걸고 친해지는 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이다. 그렇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지금 서울디자인창업센터처럼 오래 봐야 하고 사람들이 많을 때 그런가? 그런 것도 같다. 잠깐 보고 말 사이라면 그냥 기분 따라 행동하고 대화하면 되는데, 이런 환경에서의 관계는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나 보다. 굉장히 기분파라 그러지 못할 날들이 많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적극적이기 힘든 것 같다.

그게 문제가 아닌 것도 같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아 어제였구나. 우선 두 달 전쯤에 주말에 간 학교 동아리방에서 친해진 사람이 있다. 같은 과 선배이기도 하고, 그 장면이 또렷이 그려지는 걸 보아하니 나름 이야기가 재밌었나 보다. 인스타만 교환하고 이후에는 별 교류가 없었다. 어느 날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 러닝머신 사진을 보고, 내가 다니는 헬스장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어제 헬스장에서 보았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그때 한 2시간 정도 앉아서 이야기한 게 전부고 안경도 쓰고 있었는데, 그게 두 달 전인데, 실루엣 보고 바로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지. 아! 생각해보니 인스타 릴스 가끔 올렸던 거 봤구나. 이제 생각났다.

어쨌든, 그 사람인 걸 알면서도 먼저 말 걸고 인사하진 못했다. 이미 잊었을까 봐, 그래서 괜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무서웠다. 다른 사람 시선을 많이 의식했구나. 그래서 차마 말을 걸진 못하고, 연결점을 만들고자 한 행동이 헬스장 인바디 찍어서 인스타 스토리 올리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답장이 오더라. 그렇게 새로 생긴 동네 친구랑 채팅 좀 하다, 앞으로 헬스장에서 보면 인사하기로 했다. 사실 그냥 말 걸어도 됐던 거다. 사실 답장하라고 인바디해서 스토리 올린 건 좀 음침하다. 평소에도 검사를 했으면 모를까, 2년 만에 하는 거였다. 굳이 이렇게 돌아가야 했던 이유가 뭐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거절당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게 또 무서운 거고.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것들의 뿌리는 어릴 적 학창시절 같다. 친구가 없진 않았지만 항상 외로웠다. 먼저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었다. 동시에 가장 친하고 의지했던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다른 애와 더 친해질까 봐, 그래서 나를 버릴까 불안했다. 이는 더 어릴 적 친형과의 관계와 유사하다. 음, 어쩌다 보니 너무 딥해진 것 같으니 이건 여기서 끊겠다.

어쩌다 이런 얘기까지 왔지. 뭔가 다른 하고자 했던 말이 있었다. 아! 이거다. 나에게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은 아직까지도 불안이다. 자고 일어나니 누가 패턴플로우 검정색으로 만든 버전을 인스타 스토리에 공유해줬네. 멋지다. 웹사이트에 올리고 싶어서 물어봤는데 아직 답이 없다. 분명 읽긴 읽었는데. 이런 것조차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확실함과 기다림이 싫고, 안 될 거란 쪽으로 흘러간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으로 이어지고, 내가 패턴플로우를 몇 개 만들어서 샘플을 테스트베드처럼 뿌려야 하나 싶다. 그러려면 다른 부품은 충분하고, LED 매트릭스를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 사려고 보니까 가격이 또 올랐네. 조만간 연락해서 패턴플로우용으로 공급받을 곳을 찾아야겠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게 내가 일을 진행시키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론 분명 이점이 있다. 쉬지 않고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수 있으며, 항상 의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바꾸어 간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좋지 않다. 특히나 감정을 들고 있길 힘들어하는 내게는 더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의심과 불안, 죄책감과 억울함이 계속 쌓이다 보면 크게 자빠질 수 있다. 그 경우엔 여태 해왔던 것처럼 빛나는 다른 일을 찾아 도망칠 확률이 높다. 패턴플로우는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2년 정도는 이어가서 끝맺음을 내보고 싶기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 있을까.

재미? 배움과 성장? 우선 패턴플로우를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예술 프로젝트로서 여기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때 성장이라 함은 스스로 가장 취약하다 느끼는 부분이고. 예술을 무어라 생각하는지도 중요할 것 같다.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남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가? 아직 어렵다. 그 이유가 뭘까. 예술가라는 정체성은 딱히 전문성이 필요하진 않다.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때 그냥 예술가가 되는 거다. 나한테 예술과 예술가는 어떤 것이길래, 하고 싶어 하면서도 하기 어려운 거지. 아니면 단순히 방향성을 위한 도구라서 일부러 이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건가.

좀 쓸데없는 고민들과 생각들일까. 문득 왜 이러고 있나, 그냥 사운드 공부나 할까 싶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살아갈까? 아니면 단순하고 재밌게 살 수 있나. 모르겠다. 쓰다 보니 개 뻘글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냥 올릴 것 같고, 이유는 남들에게 내가 패턴플로우를 이어갈 의지가 있음을 어필하기 위함이다.

End